안녕하세요 민트롤로lifestyle입니다.
'폭삭 속았수다' 보시고 계신가요? (제주방언 :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유튜브 리뷰 올라온 것만 보다가, 저랑 같이 사는 분이 넷플릭스 신청을 하셔서 TV로 지금 몰아보기 시청중에 있어요.
중간중간 아는 내용들이지만, 다시 봐도 넘 애잔하네요.
어제도 저녁 먹으면서 보다가 목이 메어서 밥도 잘 못 먹고, 같이 사는 분도 갱년기라 '꺼이꺼이' 울고, 같이 밥 먹던 막내가 저희가 우는 것을 보더니, 자신은 왜 아빠 엄마가 우는지 몰라서 자기 자신이 싸이코패스가 된 기분이 든다고 하더라구요~ㅋㅋ (아들은 대문자 T)
저희 둘다 갱년기 여행중이라 눈물샘이 터졌나봐요.
오늘은 '폭삭 속았수다'속 우리나라 전통적인 아버지에 대해서 포스팅 할게요~
알아두면 효자정보~
"양관식"은 그 작품 속에서 제주도 토박이이로 어릴 때부터 지금의 부인인 애순이를 순정을 다해 쫓아다닌 사랑꾼이다.
솔직히 양관식은 한국의 무뚝뚝한 아버지는 맞지만, 가족들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런 인물이 바로 그 시대 많은 한국 아버지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서도 더 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노력하고, 항상 무언가 모를 미안함에 기도 못 펴고, 가족들 뒤에서 그림자처럼 가족을 지켜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존재라고 생각된다
"폭삭 속았수다"라는 드라마 속 등장인물 ‘양관식’.
고집 세고 시대에 뒤처진 듯한 그 아버지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그는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함께 살아왔던 전통적인 한국 아버지상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왜 그렇게 양관식처럼 살아야만 했는가?
그들의 고집스러운 태도, 무뚝뚝한 말투, 감정 없는 표정은 단지 성격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면에는 시대적 배경과, 무엇보다 가족을 위한 희생의 삶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는 단순한 가족 구성원을 넘어,
가정을 책임지는 기둥이자 절대 권위자였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의 대한민국은 전쟁과 가난,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며
‘가장’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책임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구조였다.
“가족만큼은 굶기지 않겠다.”
“내 자식은 나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겠다.”
이런 각오 하나로, 수많은 아버지들은 자기 꿈을 버리고, 감정을 숨긴 채 묵묵히 일터로 향했다.
양관식 같은 아버지들은 대부분 6·25 전쟁 전후에 성장기를 보낸 세대였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의 혼란,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교육과 생존의 기회조차 부족했다.
그들에게 있어 **‘살아남는 것 자체가 성공’**이었던 시절이었다.
1960~70년대,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그들은 공장 노동자, 건설 인부, 버스 기사, 농부 등 육체 노동에 평생을 바쳤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또 일하며, 자식의 등록금과 식비를 마련하기 위해 건강을 희생했다.
그렇게 살아온 아버지들에게 감정 표현은 사치였다.
사랑한다는 말을 할 시간도 없었고, 말해본 적도 없었다.
책임감이 곧 사랑이고, 침묵이 곧 표현이었던 시대.
양관식 같은 아버지들은 흔히 ‘고지식하고 답답한 꼰대’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들의 고집은 자신을 지탱해온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결국 그들은 이해받지 못하는 세대가 되었다.
사랑하는 법은 몰랐지만 사랑하지 않은 적은 없었던 사람들.
그들이 ‘양관식’이라는 인물로 되살아났을 때, 많은 이들이 울컥했던 이유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가족 때문이었다.
자신은 낡은 옷을 입고, 새 양말 하나 사지 못해도
자식의 입학식엔 꼭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가는 사람.
몸이 아파도 병원은 미루고, 자식이 감기만 걸려도 약부터 사오던 사람.
그런 아버지들은 사랑을 말로 하지 않고, 행동과 책임으로 보여줬다.
양관식은 시대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족을 지키는 마지막 방패였다.
그래서 그는 비록 시대에 뒤떨어진 말투와 행동을 보이더라도,
그 안에는 뿌리 깊은 사랑과 책임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먹고 살만 하니, 자기 몸은 돌보지 못한 양관식은 온 몸에 병이 전이되어 하늘의 별이 된다.
무쇠라고 표현될 만큼 무뚝뚝하고 고집 센 양관식 같은 아버지들은
포스팅을 마치며....
양관식이 막내를 폭풍우에 잃었을 때, 무쇠(양관식)가 무너진 모습에 더 마음이 아팠고, 무쇠가 아파하는 가족들을 위해 다시 일어섰을 때,( 자신의 슬픔보다 지금 곁에 있는 가족들의 슬픔이 더 절절했던 사람. 가족들이 더 소중한 마음) 나 또한 그런 양관식을 보며, 감정이입이 되어 눈이 퉁퉁 붓도록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어요.(여기서 오애순은 양관식을 무쇠라고 표현했다) 정말 무쇠가 맞았어요. 세상의 고된 일상에 긁히기는 했지만, 절대 부서지지 않았으니까요.
부상길도 마찬가지로 우리네 아버지 모습이에요. 양관식이나 부상길이나 같은 시대의 아버지이지만,
성격과 가족들을 대하는 태도부터 다르죠. 부상길이 거칠고, 체면을 중시하고 자기를 남에게 내세우기 좋아하지만,
가족들에게 표현방식도 서투르고, 자신의 그런 성격 때문에 가족들이 떠나버릴가봐 겁이 나서 더 큰소리치고 권위적으로 가족들을 다그쳤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양관식이 가족들에게 하는 태도를 보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깨달았고, 무뚝뚝하지만 가족들이 힘들 때 뒤에서 많은 도움들 주었고.,정말 고지식하고 표현이 서투르고 답답한 아버지들이지만, 가족들을 아끼는 마음만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민트롤로lifestyle의 티스토리블로그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만나요~
양귀비의 생애와 일화 (5) | 2025.03.30 |
---|---|
정조의 정책방향성과 정치철학 (0) | 2025.03.30 |
폭군 연산군이 유일하게 사랑한 여인 폐비 신씨(정실왕비) (2) | 2025.03.29 |
장녹수는 어떻게 연산군의 마음을 사로 잡았을까요? (1) | 2025.03.29 |
연산군은 왜 폭군이 되었나? (2) | 2025.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