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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희대의 악녀 vs 악녀, 역사 속 여인들의 진실과 오해

위인,일화,유명인물

by 민트 롤로 2025. 4. 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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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트롤로kifestyle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악녀들이 많은데, 방대한 중국에도 권력을 무기삼아 악행을 저질렀던 역대급 악녀들이 많이 있어요.

 

오늘은 우리나라의 악녀들과 박빙인 중국 역사속의 악녀들을 포스팅할게요~

 

중국 역사에는 수많은 영웅과 지략가들이 존재했지만, 그 못지않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악녀(惡女)’**라 불리는 여성들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개인의 사치나 성격 문제로 악명을 떨친 것이 아니라, 당시 국가 권력의 중심에 서서 시대를 움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종종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여성의 야욕’**이라는 틀에 가두었고, 그 결과 많은 여성 권력자들이 ‘악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중국 역사 속에서 대표적인 악녀로 언급되는 여인들을 정리하고, 그녀들의 공통점, 차이점, 그리고 실제 평가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왼쪽부터 여후,무측천,서태후,가씨




1. 중국 역사 속 악녀 TOP 5: 인물별 상세 분석

1) 여후(呂后) – 복수심으로 황궁을 피로 물들이다

 

2) 측천무후(武則天) – 황제의 자리에 오른 유일한 여인

  • 시기: 624년 ~ 705년
  • 출신: 당 태종의 후궁 → 고종의 황후 → 스스로 황제
  • 행적:
    • 정적을 숙청하고 고종의 사후 ‘무주(武周)’라는 독자적인 왕조를 세움
    • 철저한 정보망을 통해 내각을 장악하고 문치(文治) 개혁 시행
    • 딸을 죽이고 태후로 입궁한 일화는 오늘날까지도 논란
  • 평가:
    •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이자 정치적 천재
    • 냉혹함과 개혁성이 공존하는 인물

 

3) 서태후(慈禧太后) – 제국의 황혼기를 장악한 여인

  • 시기: 1835년 ~ 1908년
  • 출신: 함풍제의 후궁 → 동치제의 생모
  • 행적:
    • 실질적인 섭정으로 청나라 정치의 중심 인물
    • 양무운동과 개혁을 저지하며 보수파를 지지
    • 서태후는 함풍제의 죽음 이후 권력 쟁탈을 위해 궁중 쿠데타 감행
    • 무리한 사치와 궁중 개축으로 국가 재정 악화
  • 평가:
    • 청 왕조 몰락의 주범이라는 평가와 함께 능력 있는 정치가라는 평가가 병존

4) 가씨(賈南風) – 폭군의 아내, 혼란의 씨앗

  • 시기: 257년 ~ 300년
  • 출신: 진 혜제의 황후
  • 행적:
    • 혜제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실권 장악
    • 정적과 황족을 잔혹하게 숙청
    • 백성에게 폭정을 가하고 궁중 살육전을 유도
    • 결국 반란으로 처형됨
  • 평가:
    • 정치를 감정적으로 운영하여 혼란의 주범이 되었고, 여성 권력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기록됨

5) 모용씨와 조씨 등 기타 악녀들

  • 모용씨: 전연 황실의 여성으로 권력욕을 위해 암살과 배신을 일삼음
  • 조씨: 전국시대 연나라의 여인, 정략결혼을 이용한 음모와 배신의 상징
  • 공통점: 이들 역시 권력을 위해 가차 없이 가족과 권신을 제거하며 악녀로 기록됨

2. 악녀 vs 악녀: 비교와 대조

인물정권 장악 방식특징정치 능력주요 악행
여후 혜제를 앞세운 섭정 복수심 강함 ★★★☆☆ 기씨 고문 및 살해
측천무후 직접 황제 등극 개혁적이지만 냉혹 ★★★★★ 가족과 정적 제거
서태후 태후로서 배후 조종 보수 성향 ★★★★☆ 국비 낭비, 개혁 방해
가씨 황제를 꼭두각시로 활용 정신적으로 불안정 ★★☆☆☆ 무차별 숙청
모용씨/조씨 내연 관계, 정략 이용 음모 중심 ★★☆☆☆ 암살 및 정략 결혼

3. 악녀라는 이름, 누구를 위한 것인가?

많은 역사학자들은 “중국의 악녀는 진짜 악녀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녀들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유일하게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소수의 여인이었고, 그들의 정치적 행동은 남성 권력자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잔혹함이 과장되어 서술되거나, 오히려 권력 자체가 문제시되었죠.

측천무후의 재평가

현대 중국에서는 측천무후를 ‘페미니즘 상징’으로 재조명하는 움직임도 있으며, 냉정하지만 유능한 개혁가로 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4. 중국 악녀들의 공통점

  • 권력을 남성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장악하려 함
  • 정보 조작과 인맥을 활용해 정적 제거
  • 전통 질서에 도전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당대 사회의 강한 반발을 일으킴
  • 역사 속 묘사는 대부분 남성 사관에 의해 각색되거나 비하되었음

 

 

중국 악녀가 된 심리적 원인과 주요 악행 유형


1. 악녀가 된 심리적 원인: 시대적, 개인적 배경의 총합

1) 억압된 여성의 권력 욕구

  • 고대 중국은 유교적 가부장 사회로, 여성은 정치·사회에서 배제된 존재였어요.
  • 그러나 황실에서는 유일하게 여성이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구조가 존재했죠. 특히 황제의 어머니나 황후는 실질적인 권력을 쥘 수 있었고, 이 기회를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 이런 사회에서 여성 권력자는 종종 권력을 지키기 위해 더욱 과격하고 잔혹한 수단을 써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권력을 잃는 순간 자신과 자식의 생명까지 위태로웠기 때문입니다.

☞ 대표 사례: 여후는 남편 유방 사후, 자신의 아들 혜제의 안위를 위해 첩을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 자신의 가문을 지키기 위한 생존 본능이었습니다.


2) 정치적 외로움과 불신

  • 여성 권력자 대부분은 정치적 고립 상태에 놓였습니다.
  • 남성 중심 권력 구조에서 여성이 실권을 가지면, 대다수 남성 관료들은 이를 반기지 않았고 반란이나 암살 음모가 끊이지 않았어요.
  • 이로 인해 지나치게 의심 많고, 선제적 공격을 감행하는 심리가 생겼습니다.

☞ 측천무후는 초기에는 황후 자리조차 위태로웠기 때문에, 정적을 제거하며 왕실 권력을 장악할 수밖에 없었죠. 결국 이것이 냉혹한 여제로 보이게 만든 배경이 됩니다.


3) 사치와 욕망의 중독

  • 권력의 맛을 본 후에는 사치, 명예욕, 과도한 자아의식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이러한 여성들은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숙청, 궁중 조작, 권력의 세습 강화 등을 시도했어요.

☞ 서태후는 권력을 장악한 이후, 서태후 정원을 조성하며 국가 재정을 탕진하고, 정적을 억누르며 아들의 뒤를 이을 손자까지 조종하려 했습니다.


4) 권력을 통한 복수심 실현

  • 왕실 여성 중 일부는 어릴 적부터 차별과 학대를 경험하며 자라온 경우가 많았고, 권력을 잡은 후에는 그것을 복수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 여후는 젊은 시절 유방의 첩들에게 무시를 당했고, 나중에 자신이 황후가 되자 잔혹한 고문과 처형으로 보복했어요.


2. 악녀들이 주로 행한 대표적인 악행 유형

중국 역사에서 악녀로 분류된 이들이 공통적으로 저질렀다고 평가되는 행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궁중 독살과 고문

  •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후궁, 황자, 관료들을 독살하거나 극단적인 고문을 가하는 행위가 빈번했습니다.
  • 이로 인해 궁중은 종종 피바다가 되었고, 공포 정치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 여후가 기씨를 고문해 인간 이하의 상태로 만들고, ‘인간 돼지’라고 불리게 만든 사건은 역사상 최악의 궁중 고문 중 하나로 꼽힙니다.


2) 정적 숙청과 암살

  •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적(특히 남성 권신)을 제거하거나, 경쟁자 가문 전체를 몰살시키는 일이 흔했습니다.
  •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영향력이나 정보망을 활용해 암살과 숙청을 조직적으로 실행한 사례도 존재합니다.

☞ 측천무후는 아버지의 후계자 경쟁에서 밀린 황자들과 대신들을 암살하거나 유배시켜 자신의 정치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3) 사치와 낭비

  • 일부 여성 권력자들은 국가 재정을 무시한 채 궁궐 확장, 보석 수집, 연회 개최 등에 집착했습니다.
  • 국가가 전란이나 외세 침략으로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이들은 자신의 위신과 안락함에 집중했습니다.

☞ 서태후는 해군 예산으로 자신의 여름궁전(이화원)을 재건했고, 이것이 청나라 해군 몰락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4) 가짜 칙령 조작 및 황제 조종

  • 여후, 서태후, 가씨 등은 황제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하거나, 심지어 황제의 이름을 빌린 가짜 칙령을 발행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를 펼쳤습니다.
  • 황실의 권위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정치적 범죄였죠.

3. 악녀의 심리를 이해해야 진짜 역사를 본다

사람들은 흔히 "악녀는 성격이 나쁘고, 질투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녀들의 악행은 대부분 정치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였습니다.

  •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했던 존재들
  • 정치적 고립 속에 방어적인 선택을 해야 했던 여성들
  • 시대의 희생양이자, 동시에 권력의 맛에 취한 존재들

이처럼 복합적인 이유가 얽혀 있어 단순히 ‘악하다’는 프레임만으로는 그녀들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결론: ‘악녀’는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악녀는 진짜 악녀였을까?

중국의 희대 악녀들은 단순히 악한 존재가 아니라, 시대를 뒤흔든 권력자였습니다. 그녀들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는 있지만, 동일한 일을 남성이 했다면 ‘정치적 수완’으로 평가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악녀’란 권력을 잡은 여성에게 덧씌워진 낙인일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의 악녀들은 시대와 환경, 권력 구조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들이 벌인 악행은 잔혹했지만, 그 안에는 생존, 복수, 지배, 혹은 불안이라는 인간적인 감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역사 속 ‘악녀’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시대와 인간의 복합성을 꿰뚫어보는 일입니다.

 

포스팅을 마치며....

 

희대의 악녀들이 악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건, 자신과 자녀의 목숨 보존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그 시대에는 권력을 잡고 유지가 되지 않으면, 반대세력들이 가만히 두지 않았으니까요.

어쩌면 목숨부지를 위한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지키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오늘도 민트롤로 lifestyle의 블로그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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